역사와 문화 속 숨겨진 맛, 세계 길거리 음식의 인류학 15편 : 길거리 음식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을 꼽으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피시앤칩스(Fish and Chips)'를 말합니다. 하얀 생선 살에 두툼한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겨낸 생선구이와 손가락 굵기만 한 감자튀김의 조합은 전 세계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메뉴입니다. 흔히 이 요리를 영국의 오랜 전통 음식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피시앤칩스는 19세기 영국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기계 문명이 낳은 가장 완벽한 '노동자용 길거리 패스트푸드'였습니다.
시간을 되돌려 19세기 중반 영국의 공장 지대를 들여다보면, 당시 노동자들의 삶은 그야말로 혹독함 그 자체였습니다. 해가 뜨기도 전에 공장으로 출근해 매연과 먼지가 가득한 곳에서 하루 12시간이 넘는 고된 육체노동을 견뎌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집에 돌아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딱딱하게 굳은 빵이나 묽은 수프가 전부였습니다. 늘 칼로리가 부족했고, 고기나 신선한 생선은 상상도 못 할 만큼 비싼 사치품이었습니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비참한 식탁을 구원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대량 생산과 기술의 발전이었습니다. 첫 번째 혁신은 '증기선'의 발명과 무한정 뻗어 나간 '철도망'이었습니다. 과거에는 바다에서 생선을 잡아도 내륙으로 운송하는 도중에 상해버려 런던 같은 대도시의 서민들은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증기 기관을 장착한 트롤 어선들이 북해에서 엄청난 양의 대구와 해덕(Haddock)을 잡아 올리기 시작했고, 이 생선들은 철도를 타고 단 몇 시간 만에 영국 전역의 노동자 밀집 지역으로 가득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가격이 폭락하면서 생선은 순식간에 가장 저렴한 단백질 공급원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혁신은 신대륙에서 건너온 '감자'의 대중화였습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감자는 쌀이나 밀보다 단위 면적당 수확량이 압도적으로 많아 서민들의 배고픔을 달래주는 최고의 구황작물이 되었습니다.
이 저렴해진 생선과 감자가 하나로 합쳐진 결정적인 계기는 1860년대 런던의 유대인 이민자 유입이었습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 건너온 유대인들은 생선에 밀가루를 묻혀 튀겨 먹는 풍습이 있었는데, 영국의 한 영리한 상인이 이 튀긴 생선에 북부 지방에서 유행하던 감자튀김을 곁들여 팔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최초의 피시앤칩스 가게의 시작입니다. 기름에 바삭하게 튀겨낸 이 요리는 고된 노동으로 지친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칼로리와 지방을 단돈 몇 펜스로 제공하는 최고의 위로였습니다.
당시 피시앤칩스는 제대로 된 접시나 포장지 대신, 그날 발행된 '낡은 신문지'에 대충 싸서 판매되었습니다. 신문지는 기름을 잘 흡수해 주었고, 무엇보다 포장 값을 아끼는 최고의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퇴근길, 차가운 런던의 비바람 속에서 잉크 냄새가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따끈한 신문지 뭉치를 받아 들고, 식기 전에 손으로 튀김을 집어 먹는 것은 당시 영국 노동자들에게 유일한 삶의 낙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소박한 길거리 음식을 영국 정부도 아주 귀하게 여겼다는 사실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극심한 식량 배급제를 실시했습니다. 고기와 설탕, 심지어 빵까지 배급량이 엄격히 제한되었지만, 영국 정부는 단 한 번도 '피시앤칩스'만큼은 배급 대상에 넣지 않았습니다. 사기를 진작시키고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고칼로리의 길거리 음식을 국민들이 제한 없이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윈스턴 처칠 수상 역시 이 요리를 두고 "좋은 동반자(The Good Companions)"라고 부르며 치켜세웠습니다.
차가운 공장 매연 속에서 하루를 버틴 이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기름진 튀김 한 봉지. 오늘날 세련된 종이에 담겨 나오는 피시앤칩스를 먹을 때, 150년 전 매연 가득한 런던 골목길에서 신문지에 싸인 뜨거운 튀김을 나누며 서로를 위로했던 이름 없는 노동자들의 거친 손길을 한 번쯤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피시앤칩스는 19세기 산업혁명 시기, 증기 어선과 철도의 발달로 생선 가격이 폭락하고 감자가 대중화되면서 탄생한 노동자들의 에너지원이었습니다.
유대인 이민자들의 생선 튀김 문화와 영국의 감자튀김이 결합하여 탄생했으며, 낡은 신문지에 싸서 손으로 먹던 가장 대중적인 길거리 음식이었습니다.
세계대전 당시에도 영국 정부가 국민의 사기와 노동력 유지를 위해 배급제에서 제외할 만큼 영국인들의 영혼을 지탱해 준 상징적인 요리입니다.
다음 4편에서는 베트남의 대표적인 길거리 샌드위치이자, 프랑스의 부드러운 바게트빵과 베트남 고유의 식재료가 절묘하게 융합된 식민지 역사의 산물, '반미 샌드위치에 숨겨진 비밀' 이야기를 찾아갑니다.
여러분은 생선튀김을 먹을 때 고소한 타르타르소스를 선호하시나요, 아니면 영국 전통 방식처럼 식초(비네거)와 소금을 살짝 뿌려 드시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여러분의 취향을 댓글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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